김우중 회장 나이 키 프로필 셀럽병사 사망 대우 티코
KBS 2TV 한국 최초의 의학 스토리텔링 예능 ‘셀럽병사의 비밀’에서 단기간에 재벌이 된 김우중 회장과 ‘찬또’ 이찬원의 인연이 밝혀집니다.
오늘은 김우중 회장 나이 키 프로필 셀럽병사 사망 대우 티코 등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김우중 회장 나이 키 프로필 셀럽병사 사망 대우 티코
김우중 회장 셀럽병사의 비밀 사망 티코
4일 방송될 ‘셀럽병사의 비밀’에서는 미국 2선 대통령 트럼프,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 등 세계 유력 정치인은 물론 기업가들과 만나 대한민국 직수출의 길을 연 남자, 40대에 재벌 회장이 된 대우그룹 김우중 회장의 생로병사가 조명됩니다.
이번 방송에는 작사가 김이나가 게스트로 등장해 그 시대의 생생한 기억(?)으로 김우중 회장의 생전 모습을 설명하죠.
중증외상센터 원작자이자 이비인후과 전문의인 이낙준은 “이제서야 저보다 누나라는 게 실감이 난다”며 김이나의 ‘동안’에 감탄.
“대한민국은 몰라도 대우는 안다”는 말이 있을 정도의 유명세를 타며 재계 2위의 재벌 그룹으로 단기간에 가치를 올린 김우중 회장은 밀리언셀러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의 저자이기도 합니다.
‘경제학과 출신’ 이찬원은 “이 책이 90년대 대학생들의 필독서였다. 저도 서너 번 정독했다. 김우중 회장의 경제 철학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난다”며 김우중 회장과의 인연을 설명.
그런가 하면, 김우중 회장이 중학교 시절 신문 배달로 사업의 첫 발걸음을 뗀 일화도 공개.
그가 기가 막힌 판매전략으로 라이벌들을 모두 따돌리고 단독으로 매출을 올린 일화에 장도연은 “저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우유배달을 한 적이 있는데, 뒤에 수금을 해야 한다”며 “쉽지도 않고 틀리기도 부지기수다. 몸도 지치고 마음도 힘들어서 나가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놀라워했죠.
한편 소형차 '포니'에 대항해 대우 김우중 회장이 진정한 의미의 경차 '티코'를 출시한 이야기가 공개되죠.
그는 직접 출퇴근 시에 티코를 타고 다니며 열정적으로 마케팅했지만, 그 시대를 경험한 작사가 김이나는 "껌 밟으면 멈추는 차, 터널 거미줄에 매달린다는 소문이 있었다"며 티코의 당시 평가를 전했습니다.
이처럼 현대·대우·삼성, 3개의 대기업이 '3대 천왕'의 시대였던 90년대의 대한민국에 나라를 뒤흔든 큰 사건이 발생.
바로 '국가 부도의 날'인 1997 'IMF 외환위기'.
이찬원은 "저희 아버지도 대기업 사원이셨는데 98년부로 명예퇴직하시고, 고향으로 돌아와서 사업을 전전하셨다고.
아버지, 어머니들 세대가 참 힘드셨을 것"이라며 시대의 고통에 공감.
그러나 김우중 회장은 IMF를 기회로 보고 부실기업을 공격적으로 인수하는 승부수를 둡니다.
그의 선택의 결과가 어떻게 되었을지, 본 방송에서 공개.
김우중 회장 나이 키 프로필 셀럽병사 사망 대우 티코
김우중 회장 생년월일은 1936년 12월 19일
고향은 대구광역시 중구 봉산동 225-5
사망일은 2019년 12월 9일 (향년 82세)
발인은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원천동 아주대학교병원
묘소는 충청남도 태안군 태안읍 인평리 산64-2 라고.
본관은 광산 김씨 (光山 金氏)
호는 주산 (宙山)입니다.
김우중 회장은 대우그룹 창업주로 한때 정주영, 이병철과 함께 대한민국 3대 재벌 신화 중의 하나이자 이명박과 더불어 샐러리맨 신화의 대명사로 불리던 인물이죠.
자본금 500만 원을 20조 원으로 불리고 포춘지에도 대서특필된 기업가로 명성을 떨쳤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그의 성공 신화는 자그마치 21조 원이라는 어마어마한 규모의 분식회계를 통해 일궈낸 허황된 신화였고 17조원이라는 어마어마한 추징금을 받았습니다.
참고로 전두환이 2013년에 납부할 미납 추징금이 1,672억 원, 전두환의 100배이며 사망 당시 국내 최고 갑부였던 삼성그룹의 전 회장인 이건희의 재산은 약 23조 7,100억 원이었다. 즉, 개인 자산으로는 내고 싶어도 절대 낼 수가 없는 금액.
1999년 12월, 중국 옌타이를 시작으로 베트남에서 3년 6개월 동안 거처로 삼다 영국을 경유해 프랑스에서 정부의 도움으로 임시 국적을 만들어 2005년까지 있었으나, 대한민국 정부와 인터폴의 압박으로 2005년 6월 14일에 귀국했습니다.
이후 신장섭 교수 등과 만나 대우 해체 과정에 대해 이야기했으며, "대우는 살 수 있었으나 김대중 정부 관료들이 사실상 기획 해체했다."고 주장.
물론 정부 당국자들은 아니라고 단호하게 말했죠.
김우중 회장은 당시 김대중 대통령에게 편지까지 쓰면서 대우를 살리려 했지만 결국 대우는 무너졌습니다.
김우중 회장은 제주도 출신으로 제주도지사를 지낸 아버지 우당 김용하와 어머니 전주 전씨(全州 全氏) 전인항(全仁恒, 1902. 3. 19 ~ 1981. 3. 26) 슬하 6남 1녀 중 5남으로 태어났습니다.
그가 태어났을 당시 부친이 대구사범학교 교장을 하던 시절이었다고.
아버지 김용하가 박정희의 만주 군관학교 입학을 크게 도와준 인연이 있죠.
경기고등학교 52회 졸업동기생으로 이종찬 전 국가정보원장, 고건 전 대한민국 국무총리, 박용오 전 두산그룹 회장, 이준용 대림그룹 명예회장, 조양래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 회장, 배우 신구 등이 있다고 하네요.
학창시절 선도부장이었으며 이종찬과는 둘 다 경기고 내에서 주먹패로 날렸다고 합니다. 주먹도 잘 쓰지만 배짱이 남달랐다고.
6.25의 혼란기와 본인의 방황속에 1년을 유급해 1956년 경기고등학교를 졸업했다고.
이후 연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한 뒤 친척이 운영하는 무역회사에서 바이어로 근무하다 1967년 독립해 자본금 500만원으로 대우실업을 창립.
창업 초기에는 과거 자신이 바이어 일을 하던 동남아시아의 의류 원단 및 자재 공급 관련 사업을 주로 하는 그저 그런 중소기업이었지만, 창업 이후 유창한 영어 실력과, 제2금융권으로부터 돈을 빌린 뒤 해외 회사에 오퍼를 내고, 계약이 성사되면 그 때 돈을 갚는 독특한 자금 동원 능력, 박정희 대통령과의 인맥과 경기고 인맥 등을 잘 활용해 창업 5년만에 100만 달러 수출을 기록했죠.
이후에는 사업 범위를 공격적으로 확장했는데, 특히 중동붐으로 엄청난 대박을 터뜨려서 불과 10여년만에 대한전선, 동명목재, 쌍용그룹 등 여타 쟁쟁한 기업들을 제치고 현대그룹, 삼성그룹, 럭키그룹에 이은 4대 재벌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전두환, 손영길 등 하나회 소속 장교들과 가까히 지냈다는 이유로, 1973년 윤필용 사건 때 육군보안사령부에 끌려가 조사를 받다가 경기고등학교 동기생 이종찬이 중앙정보부에 근무중인 덕분에 큰 화를 면하였다고 합니다.
이후 신군부의 비호를 받아 동양증권, 대한전선 가전사업부문(대우전자), 새한자동차(대우자동차) 등을 인수하며 더욱 몸집을 불렸다고 특히 자동차 회사 인수 후에는 독일 만(MAN) 사와의 기술 제휴로 잔고장이 적은 MAN 엔진을 개발, 이전까지 우리나라 운수업계의 골칫거리였던 차량 정비 관련 비용을 크게 줄이는데 기여하게 되었다네요.
김우중 회장은 2018년부터 알츠하이머로 투병하며 본인이 발전시킨 아주대병원에서 투병하다가 2019년 12월 9일 밤, 숙환으로 사망.
주요 언론사들에서 건강 악화를 이유로 병원에 입원해 있다는 보도를 한 지 채 몇 시간도 지나지 않아서 사망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유언은 따로 없었다고 하며 고인의 뜻에 따라 장례는 천주교식으로 치러지며 12일 발인이 진행되었습니다.
장례식 당시 수많은 정치인들과 수많은 기업인들이 조문을 왔지만, 막상 김우중의 유족 측은 정치인들과 기업인들이 내 주는 부조금을 단 한 푼도 받지 않은 것이 소소하게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2019년 12월 12일, 자신의 생애를 바친 곳 중 하나인 아주대학교에서 영결식을 진행하고, 고인의 모친인 전인항 여사의 묘소가 있는 충남 태안군 선산에 매장되었죠.
김우중이 후원하고 운영한 아주대학교에서는 그를 기리며 아주대학교의 본관인 율곡관 앞에 그의 1주기인 2020년 12월 9일에 동상을 제작, 공개하였습니다.
김우중은 전 미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가 1990년대 파산 지경에 놓였던 시기에 적지 않은 도움을 주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트럼프는 대우그룹과의 합작 사업인 뉴욕 트럼프월드를 성공하게 하면서 부동산 개발업자로서의 명성을 회복하는 데 김우중 회장은 상당히 파격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고 하죠.
당시 빚더미에 올라있던 트럼프의 상황을 배려해서 대우는 트럼프라는 브랜드 사용료만으로 매년 수백 억을 지급했으며 이는 아무리 영화 출연 등으로 이미 명사였던 트럼프의 인지도를 고려한다 해도 과한 것이었다고.
외환위기 직후에는 김우중의 초청으로 한국을 방문하여 거제 조선소와 대우차 공장 등을 둘러보고 대우 그룹 소유의 골프장에서 골프도 같이 쳤다고 합니다.
서울과 대구, 부산 등에 여러 군데 남아 있는 트럼프 월드는 이때 대우그룹과 트럼프의 인연이 남긴 유산.
도널드 트럼프가 모두의 예상을 깨고 대통령 당선이 되면서 이 일화가 재조명받기도 한 바 있었죠.
김우중 회장.
명과 암이 있는 인물.
잘못한 것도 있지만 되짚어볼 만한 구석이 많은 현대사에 큰 인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