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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연예

고종 죽은 이유 사망 원인 커피 독살 가계도 아관파천 후궁

by 해피라이프0206 2025. 1. 14.

고종 죽은 이유 사망 원인 커피 독살 가계도 아관파천 후궁

고종 죽은 이유 사망 원인 커피 독살 가계도 아관파천 후궁

 

KBS 2TV <셀럽병사의 비밀> 다섯 번째 시간에서는 여전히 의문이 풀리지 않은 ‘고종황제 독살설’의 진실을 추적합니다.

오늘은 고종 죽은 이유 사망 원인 커피 독살 가계도 아관파천 후궁 등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고종 죽은 이유 사망 원인 커피 독살 가계도 아관파천 후궁

고종 셀럽병사의 비밀 유성호 교수

이날 방송에는 서울대 의대 법의학교실 유성호 교수가 출연해 기대를 더합니다.

 

조선의 제26대 왕이자 대한제국의 초대 황제로 파란만장한 삶을 산 고종. 일제에 의해 강제 퇴위된 후 덕수궁에서 지내던 고종 황제가 1919년 1월 21일, 68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조선총독부가 발표한 공식적인 사인(死因)은 ‘뇌일혈(뇌내출혈)’. 그런데 고종 서거 직후, ‘고종이 독이 든 식혜를 마시고 독살되었다’는 괴문서가 전국에 뿌려졌죠.

 

 

고종은 사망 당일 식혜를 마신 후 갑작스러운 마비 증세와 발작을 일으키다 급서했습니다.

 

고종의 염을 지켜본 이들의 증언에 따르면 사망한 고종의 이가 모두 빠지고, 혀가 닳아 없어지는 등 시체 상태가 이상했다는데... 고종은 정말 독살된 것일까요?

 

이날 방송에서는 대표적 친일파‘이완용’을 넘어서는 ‘윤덕영’의 친일행태와 그가 인왕산 자락에 세운 약 2천6백 제곱미터(800평)의 초호화 대저택을 공개합니다.

 

 

대한제국 시절 수입 자재로 지어진 화려한 저택의 모습에 MC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죠.

 

 

 

죽은 이에게 억울함이 없도록 그 사인(死因)을 명확히 밝혀낸다는 서울대 법의학교실 유성호 교수가 고종 독살에 대한 의혹 분석에 나섰습니다.

 

 

약산성을 띠는 식혜에 특정 독성분이 첨가되었다면 고종이 이를 인지하지 못하고 식혜를 마셨을 가능성이 있지만 사망 당일 기록된 고종의 증세와는 명확히 맞지 않는 상황.

 

 

게다가 사망한 고종 몸에 남아있던 수상한 흔적들은 모두 ‘이것’ 때문이라는데.

 

이날 방송에서는 고종의 죽음을 초래했을지도 모르는 그의 수면 습관과 식습관도 공개됩니다.

 

 

고종은 명성황후시해사건 이후 자신도 언제 암살당할지 모른다는 불안에 떨며 불면증에 시달리는가 하면, 수라상마저 믿을 수 없어 비밀리에 운반했다고 하죠.

 

밤낮이 거꾸로 바뀐 생활을 지속한데다 와플, 까눌레 등 당이 많은 서양 디저트를 즐겨 먹었다는 고종.

 

이낙준(의사, 작가)은 이러한 습관이 당뇨를 유발하고 ‘뇌졸중’의 위험 요인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죠.

 

고종의 생애 흥선대원군 아관파천 후궁 가계도

 

고종은 조선의 혼란스러운 시대를 살며, 나라를 지키려 노력했던 비운의 군주입니다. 그의 생애는 격변하는 국제 정세 속에서 조선이 겪었던 아픔과 변화를 고스란히 담고 있습니다.

 

 

 

 

흥선대원군의 그늘 아래 즉위와 아관파천

즉위와 섭정:

고종은 12세의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올랐지만, 실권은 외가인 민씨 세력과 아버지인 흥선대원군이 쥐고 있었습니다. 흥선대원군은 쇄국정책을 추진하며 서양 세력의 침투를 막으려 했지만, 결국 실패하고 실권을 잃게 됩니다.

 

 

명성황후 시대와 개화:

명성황후 민씨는 개화를 추진하며 서양 문물을 받아들이려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보수 세력의 반발과 일본의 간섭으로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갑오개혁과 아관파천:

1894년 갑오개혁이 일어나면서 조선은 근대화를 향해 나아가는 듯했지만, 일본의 침략으로 실패하고 명성황후가 시해되는 비극이 발생했습니다. 고종은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하는 아관파천을 단행했습니다.

 

 

 

러시아 대사관

 

러시안 함선

 

 

 

대한제국 선포와 일제의 압박

 

대한제국 선포: 고종은 아관파천에서 돌아와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황제에 즉위하며 자주 독립 국가임을 선포했습니다.

 

일제의 침략과 을사늑약: 하지만 일본은 조선을 병합하려는 야욕을 버리지 않았고, 1905년 을사늑약을 강제로 체결하여 조선의 외교권을 박탈했습니다.

 

헤이그 밀사 파견: 고종은 을사늑약의 부당함을 알리기 위해 헤이그 밀사를 파견했지만 실패하고, 결국 1907년 순종에게 황위를 물려주고 덕수궁에 유폐되었습니다.

 

 

 

 

고종의 가계도

 

 

고종은 조선 제26대 왕이자 대한제국의 첫 황제입니다. 그의 가계는 조선 왕조의 역사와 깊게 연결되어 있으며, 특히 흥선대원군의 정치적 입지와 민씨 세력의 부상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합니다.

 

 

 

 

 

영친왕

 

 

 

 

흥선대원군과 민씨 세력의 만남

 

고종의 아버지는 흥선대원군 이하응입니다. 흥선대원군은 영조의 현손으로, 강력한 정치적 야심을 가진 인물이었습니다. 어머니는 여흥 민씨로, 민씨 세력의 부상에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흥선대원군은 철종이 후사 없이 승하하자, 자신의 아들인 고종을 왕위에 올려 권력을 장악했습니다. 이는 민씨 세력과의 정략적인 결혼을 통해 이루어진 결과였습니다.

 

 

고종의 즉위는 조선 왕조에 큰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흥선대원군은 쇄국정책을 추진하며 서양 세력의 침투를 막으려 했지만, 결국 실패하고 실권을 잃게 됩니다.

 

이후 명성황후 민씨가 정치에 참여하며 개화를 추진하게 되고, 조선은 근대화라는 새로운 길을 모색하게 됩니다.

 

고종의 가계도는 조선 왕조 말기의 정치적 상황과 격변하는 국제 정세 속에서 조선이 겪었던 아픔과 변화를 보여줍니다.

 

흥선대원군과 민씨 세력의 대립, 개화와 쇄국 논쟁, 그리고 일본의 침략 등 복잡한 역사적 사건들이 고종의 가계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죠.

 

 

 

커피와 서양 문물을 즐겨 먹었다는 고종.

 

 

윤덕영 같은 매국노 때문에 나라가 더 급속히 망가졌습니다.

 

 

 

국민들이 깨어있지 않으면 안된다는 교훈을 또 한번 일깨워주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