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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연예

김일 나이 키 프로필 박치기 고향 학력 프로레슬러 선수 역도산 제자

by 해피라이프0206 2025. 2. 25.

김일 나이 키 프로필 박치기 고향 학력 프로레슬러 선수 역도산 제자

김일 나이 키 프로필 박치기 고향 학력 프로레슬러 선수 역도산 제자

 

이번주 KBS 2TV‘셀럽병사의 비밀’에 ‘프로레슬링의 전설’ 김일이 등장해 화제입니다.

오늘은 김일 나이 키 프로필 박치기 고향 학력 프로레슬러 선수 역도산 제자 등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김일 나이 키 프로필 박치기 고향 학력 프로레슬러 선수 역도산 제자

프로레슬러 김일 셀럽병사의 비밀 박치기왕

"이찬원, 진짜 ‘69년생’이었나... 김일을 어떻게 알아?" 이찬원의 69년생 썰이 다시 수면 위로 올랐습니다.

 

오는 25일(화) 방송되는 ‘셀럽병사의 비밀’에‘프로레슬링의 전설’ 김일이 등장.

 

 

“모국에 와서 치료받아 기쁘다”는 전설의 무도인이 화면에 등장했지만 MC들은 그를 낯설어했는데요.

 

어느덧 70대가 되어 병원 생활 10년 차인 그의 모습은 전성기의 모습과 사뭇 달랐죠.

 

 

그러나 그를 한눈에 알아본 허경환은 “제 나이 또래의 운동에 관심 있는 친구들은 다 아는 분”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영상 속 노신사가 ‘프로레슬링의 전설’ 김일로 밝혀지자, 이찬원은 “박치기!”라며 감탄했는데요.

 

이에 허경환은 “이찬원 씨가 어떻게 김일을 아느냐”며 깜짝 놀랐고 그러자 장도연은 “69년생이라서...”라며 이찬원 나이 의혹(?)을 부추겼죠.

 

 

 

이찬원은 “제가 96년생인데, 69년생이라는 설이 몇 화째 돌고 있다”면서도 “김일 선생님은 일단 너무 유명하다. 사회시간, 체육시간에 교과서에서 봤다. 부모님 세대에 ‘스포츠계의 아이돌’로 불린 분이다”라고 해명했습니다.

 

 

허경환은 “지금은 프로 경기에 박치기가 금지됐다. 위력이 어마어마하기 때문에...”라며 ‘박치기’의 대명사 김일이 선보인 엄청난 필살기의 위력을 설명.

 

 

이어 김일의 ‘박치기’가 탄생한 뒷얘기와 이찬원이 “진작에 죽었을지도 모른다”고 경악한 김일 특유의 수련법도 공개되는데요.

 

역사 속 셀러브리티의 은밀한 생로병사를 파헤치는 한국 최초의 의학 스토리텔링 예능 ‘셀럽병사의 비밀’ 10회 ‘전설의 박치기왕은 어디로 갔을까?’ 김일 편은 오는 25일(화) 오후 8시 30분 방송됩니다.

 

김일 나이 키 프로필 박치기 고향 학력 프로레슬러 선수 역도산 제자

김일 나이는 1929년 2월 24일생

 

 

김일 사망 나이는 2006년 10월 26일 (향년 77세)

 

 

 

본명은 김태직(金泰稙)

 

한국 링네임은 김일(金一), 일본 링네임은 오오키 킨타로(大木金太)

 

고향은 전라남도 고흥군 금산면 거금도

 

본관은 김해 김씨

 

김일 키는 185cm, 몸무게는 120kg(현역 시절 기준)

 

 

종교는 불교

 

가족은 아내 이인순, 장녀 김애자, 차녀 김순희, 장남 김수안 전처와는 1987년에 사별했는데(백혈병으로 작고) 했는데, 이인순 여사와는 간병인과 환자로 만난 뒤 1995년에 재혼했고요.

 

 

본래는 2남 2녀를 두었지만, 차남은 군대에서 불의의 의문사고로 부친보다 일찍 세상을 떠났다고 합니다.

 

 

김일의 외손자 박선준은 2021년 재보궐선거에 더불어민주당 소속으로 출마해 전남도의원에 당선.

 

별명은 맹호(猛虎), 원폭 박치기(原爆頭突き)

 

주요 커리어는

WWA 세계 헤비웨이트 챔피언

WWA 세계 태그팀 챔피언

NWA 인터내셔널 헤비웨이트 챔피언

NWA 인터내셔널 태그팀 챔피언 3회

올 아시아 헤비급 챔피언 4회

올 아시아 태그팀 챔피언 4회

극동 헤비급 챔피언

도쿄 스포츠 프로레슬링 대상 감투상 (1975)

도쿄 스포츠 프로레슬링 대상 공로상 (2006)

대한민국 국민훈장 석류장

대한민국 국민체육훈장 청룡장

대한민국 스포츠영웅 (2018)

 

피니시 무브는 아토믹 헤드벗, X자 굳히기, 피겨 포 레그락 유형은 브롤러 + 올드 스쿨

 

 

테마곡은 Cozy Powell - Theme One (Cosmic Highway)

 

김일은 젊은 시절에 무작정 일본으로 밀항하여 형무소에 갇히는 고초를 겪다 편지로 연을 맺은 역도산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역도산이 자신의 후견인이었던 오노 반보쿠 자민당 부총재에게 부탁을 하여 김일은 형무소에서 풀려날수 있었다고 하죠.

 

이때 역도산의 제자가 된 계기가 되는 재미있는 일화가 있는데요.

 

김일이 일본행 밀항선을 탔다가 체포되어 형무소에 복역하던 도중에 역도산에게 "프로레슬러가 되고 싶다." 라고 편지를 보냈죠.

 

김일은 역도산의 집 주소를 몰라서 그냥 "日本 力道山" 이라고 썼는데 무사히 역도산에게 편지가 도착했다고.

 

 

그리고, 김일이 석방된 뒤에 연락이 되어 역도산의 제자가 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일본에서는 오오키 킨타로(大木金太?)라는 링네임으로 활약했으며 박치기를 필살기로 삼았죠.

 

 

전성기 시절 역도산의 단체 일본 프로레슬링(JWA)에서 자이언트 바바, 안토니오 이노키와 함께 젊은 삼총사(若手三羽がらす)로 불리는 등 거물로 손꼽혔습니다.

 

 

바바와 이노키가 훗날 일본을 넘어 전세계 프로레슬링계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고려해보면 상당한 의미를 갖는 부분이죠.

 

하지만 스승 역도산이 1963년 시비가 붙은 야쿠자를 두들겨패다 칼에 찔려 허망하게 사망.

 

이후 일본에서 석연치 않은 이유로 한국으로 귀국하여 이후 대한 프로레슬링의 에이스로 활동하게 됩니다.

 

그러다 역도산이 세운 일본 프로레슬링 단체에서 안토니오 이노키와 자이언트 바바 등 간판스타들이 이탈하는 혼란스러운 와중에 참전 요청을 받아들여 다시 일본으로 건너가죠.

 

 

김일은 "스승님의 단체인 일본 프로레슬링을 저버릴 수는 없다!"는 이유로 일본 프로레슬링을 끝까지 지키는 길을 선택.

 

하지만 일본 프로레슬링은 방송권을 전일본 프로레슬링과 신일본 프로레슬링에 모두 빼앗겨 TV 중계가 전혀 되지 않는 등 여러 요인으로 인하여 결국 몰락하고 맙니다.

 

 

이후 전일본 프로레슬링, 신일본 프로레슬링, 그리고 제3의 단체인 국제 프로레슬링 등을 전전하며 경기를 가졌지만 그다지 탄력을 받지 못하고 서서히 활동이 줄어들게 되죠.

 

하지만 그러한 와중에서도 신일본 프로레슬링에서 열린 1974년 안토니오 이노키와의 NWF 헤비급 챔피언 결정전에서 명경기를 펼치는 등 큰 활약을 남깁니다.

 

 

1989년 고혈압 투병 이후 선수 생명이 끝난지 오래인 1995년 4월 2일 6만 관중이 모인 도쿄돔에서 일본 은퇴식을 가졌는데요.

 

은퇴식은 신일본, 전일본, UWFi, FMW 등 당시 일본 최고의 프로레슬링 단체들이 함께 개최한 올스타 흥행인 '꿈의 가교(夢の懸け橋)' 가운데 열렸습니다.

 

 

잠시 라이벌이기도 했던 전설 루 테즈가 밀어주는 휠체어에 앉아 입장, 스승인 역도산 등과의 일화를 이야기 한 뒤 최후의 10카운트 공을 들으며 눈물을 흘렸고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중립 링포스트를 몇 차례 두드린 뒤 링을 뒤로 했습니다.

 

김일은 한국 프로레슬링에도 진출했는데, 본래 한국 프로레슬링은 역도산의 TV 중계를 보면서 자생적으로 프로레슬링을 시작한 국내파 선수들로 시작해서 어느 정도 터와 입지와 자리를 슬슬 닦아놓고 있었는데요.

 

다만 이 쪽에서는 김일이 한국에서 일본으로 건너갔다가 다시 컴백했다는 걸 잘 몰랐기 때문에 자연히 상당한 마찰이 있었죠.

 

김일 이전의 한국 프로레슬링의 양대 거성이었던 장영철과 천규덕 가운데 천규덕은 김일과 협력하게 되었으나, 장영철은 완전히 김일과 척을 집니다.

 

이때 장영철도 자존심을 세울 법한 것이 장영철은 원래 아마추어 레슬링을 하던 정통파 레슬러였고요.

 

 

공칭 100명이라 할 정도로 엄청난 수의 제자를 가지고 있었으며, 초창기 몇 년 간은 장영철이 백지에서 프로레슬링 판을 혼자서 닦아 세운 것이나 다름없었죠.

 

장영철 입장에서는 충분히 김일을 '굴러들어운 돌'이라고 여길 만했는데요.

 

당시 김일과 장영철의 대립은 심각해서 장영철이 단체를 따로 만들어서 나가고, 장영철 파는 김일 계열과는 아예 시합도 가지지 않을 정도.

 

 

장영철은 본래 같이 경기를 하던 천규덕과도 사이가 틀어져서 급기야 천규덕과 장영철이 워크 없이하는 실전 대결을 벌이게 되었지만 서로 차마 제대로 공격하지 못해서 흐지부지되는 일도 있었다네요.

 

 

하지만 해외 인맥이 미흡했던 장영철계는 점점 도태되었으며, 반면 김일은 지속적으로 흥행을 성공하면서 한국 프로레슬링계의 대부격인 존재가 되었죠.

 

김일은 장영철이 가지지 못한 해외 인맥을 이용해 프로모터로서 캐나다, 미국, 일본 등의 국적을 가진 선수들을 동원.

 

김일은 스승 역도산이 일본에서 성공한 방식을 비슷하게 벤치마킹해서 자기보다 덩치가 큰 미국 선수나 일본 선수를 상대로 싸웠기 때문에 당시만 해도 잘 통하던 일종의 국뽕 효과까지 겹쳐서 인기가 더욱 좋았죠.

 

게다가 당시엔 프로레슬링이 짜인 각본대로 움직이는 게임이라는 것을 아직까지 대중들은 잘 인지하지 못하던 시절.

 

이런 인기를 업고 김일은 전용 체육관까지 얻게 됩니다.

 

 

처음에는 중구 정동에 새로 지어진 '문화체육관' 2층의 일부를 얻어 '김일 도장'을 정부로부터 하사받았고요.

 

전두환 정권이 들어서자 이 자리는 빼앗기고 '문화체육관'은 후일 정동이벤트홀로 바뀌게 됩니다.

 

이후 김일은 답십리(지금의 서울교통공사 본사 부근)에 전용 체육관을 얻었지만, 프로레슬링 인기 퇴조로 세월이 지나면서 전용 체육관도 스탠드바로 개조 후 경남기업 사옥이 되었다가 지금은 오피스텔이 들어서 있죠.

 

김일은 세계 프로레슬링 역사에서도 자신의 족적을 제법 남긴 프로레슬러.

 

 

그래서, 보통 한국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프로레슬링 역사에서 거물로 취급받는 인물이죠.

 

다만, 세계에 족적을 남긴 그 이름은 대개 일본에서 활동하던 당시 명칭인 오오키 킨타로로 남아있는데요.

 

당연히 일본이나 서양 프로레슬링 골수 덕후들도 김일보단 오키 킨타로로 알고 있는 경우가 압도적.

 

그래도 김일은 일본에서 현역으로 활동하던 당시에는 일본식 이름을 쓰면서도 언론에서는 그를 “한국의 맹호”라고 칭하고, 한복을 입고 링에 등장하는 등 스승 역도산과 달리 한국인 정체성을 아예 숨긴 채 살아간 건 아니었기에 그가 토종 한국인이라는 건 당대에도 아는 사람들이 있었죠.

 

당연히 지금은 정보가 확실히 알려지면서 덕후 한정으론 그가 한국 국적의 정통 한국인에 활동명도 김일이라는 것 정도는 아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일본이나 서구권 매니아들도 지금은 오오키 킨타로와 함께 본명 김일 역시 같이 표기해주는 경우가 많죠.

 

화려했던 현역 시절과는 달리 말년은 행복하지 못했는데요.

 

1989년 고혈압으로 쓰러진 이후 일본에서 투병 생활을 했는데, 그런 연유로 1998년 9월 27일자 KBS2 <영상기록 병원24시> 등지의 TV 프로그램에서 그의 건강이 좋지 않다는 이야기가 몇 번이나 나왔었죠.

 

젊었을 때부터 워낙 혹독하게 본인을 혹사시켜가며 맹훈련을 했는데, 야구방망이로 맞고, 나무기둥, 콘크리트벽, 골프클럽으로 단련하는 등 단단한 물체에다 대고 허구한 날 연습한 나머지 두개골에 상처가 남는 등 큰 후유증을 입었고, 거동도 많이 불편했다고 합니다.

 

 

또한 사업도 몇차례나 실패하면서 이 과정에서 날린 돈들도 상당하다고...

 

1994년 귀국 이래 서울 을지병원으로 옮겨 투병생활을 이어가던 그는 칠순이 약간 넘은 때였던 2000년 3월 25일, 마침내 장충체육관에서 그토록 바라던 국내 은퇴식을 치렀고, 당시 박지원 문광부장관으로부터 체육훈장 맹호장을 수여받았죠.

2003년에는 고향 거금도에 공적비가 제막됐습니다.

 

김일이 당대 최고 프로레슬러로 활동하던 시절, 권투와 프로레슬링 팬이던 박정희가 김일을 초청하여 원하는 것을 들어주겠다고 하자 고향에 전기와 수도시설을 놓아달라는 요구를 했다고.

 

 

때문인지 거금도는 섬이라는 지형상 전기와 수도시설이 부족하기 마련인데, 금산면은 섬 중에선 가장 먼저 전기가 들어온 곳이라고.

 

박정희 대통령 생전에 그의 고향에 전기와 수도를 공급했다고 합니다.

 

은퇴 후 건강과 재산을 나날이 잃어가던 와중에 사기도 몇 번 당할 뻔했으나, 정작 본인같이 가난한 사람 털어먹겠느냐고 넘어갔다죠.

 

국내에 처음으로 WWE RAW 투어가 왔을 때 특별 게스트로 관중석에 앉아 시합을 관람했는데, 릭 플레어가 허리를 숙여 인사하면서 김일에게 예를 갖췄습니다.

 

2006년 2월에는 41년 전 '프로레슬링은 쇼다' 사건 이후 완전히 갈라섰던 전 프로레슬러 장영철을 직접 찾아가 그간에 쌓인 넋두리를 풀고 화해하는 모습을 보여주어 두 사람을 기억하는 팬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주었죠.

 

그리고 장영철은 그 해 8월, 김일은 두 달 후 10월 26일에 만성신부전증 및 심장혈관 이상으로 인한 심장마비로 인해 7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김일의 장례는 체육인장으로 치러져 유해는 고향인 전남 고흥군 금산면 생가 옆에 안장됐으나, 2020년 5월에는 국립대전현충원 국가사회유공자 묘역에 이장.

 

 

김일의 회고에 의하면 일본 활동 당시 재일교포 출신 야쿠자인 정건영과도 어울려 김일이 귀국했을 때 그가 야쿠자와 연관이 있다는 루머가 돌기도 했다는데요.

 

하지만 김일은 레슬러지만 폭력 자체는 천성적으로 싫어한다며 야쿠자와도 연관이 없다고 부정했죠.

 

사실 김일 본인은 박치기를 할 때마다 너무 아파서 하기 싫었지만, 사람들의 호응에 어쩔 수 없이 몸을 박살낼 정도로 박치기를 했다고 하네요.

 

영원한 박치기왕 김일 선수 천국에서 행복하시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