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하 나이 고향 프로필 노래 봄비 가사 근황 아버지
쿠싱증후군 봄비 미소를 띄우며 당신께만의 가수 이은하가 가요무대 1875회에 출연합니다.
이은하는 쿠싱증후군으로 많이 아팠다고 하네요.
오늘은 이은하 나이 고향 프로필 노래 봄비 가사 근황 아버지 쿠싱증후군 등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이은하 나이 고향 프로필 노래 봄비 가사 근황 아버지
쿠싱증후군 이은하 가요무대 1875회 출연
이번 주 가요무대 1875회 출연진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사랑은 계절 따라(박건) / 박건
2. 울며 헤진 부산항(남인수) / 문희옥
3. 고향 무정(오기택) / 강진
4. 우정(이숙) / 정연순
5. 나무와 새(박길라) / 오유진
6. 바다가 육지라면(조미미) / 김의영
7. 미소를 띄우며 나를 보낸 그 모습처럼(이은하) / 이은하
8. 과거는 흘러갔다(여운) / 여운
9. 봄날은 간다(백설희) / 미스김
10. 고향 설(백년설) / 남일해
11. 화류춘몽(이화자) / 김소유
12. 숨어 우는 바람 소리(이정옥) / 이정옥
13. 구름에 달 가듯(오승근) / 오승근
14. 추억의 소야곡(남인수) / 남자 출연자
이은하는 미소를 띄우며 나를 보낸 그 모습처럼를 부르네요
한편 이은하가 쿠싱 증후군으로 1년 만에 35㎏이 찐 후 다이어트를 한 근황을 밝혔습니다.
최근 방송된 tvN '프리한 닥터'에는 가수 이은하가 출연해 근황을 공개했죠.
이은하는 "제가 모습이 많이 변했고, 많이 아팠다"라며 "갑자기 쿠싱 증후군이 느닷없이 찾아왔다, 스테로이드 과다 복용으로 인해 35㎏이 1년 만에 쪘고, 95㎏까지 쪘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는 "몸무게가 많이 나가니까 관절이 버티질 못해서 연골이 닳아 없어져서 한쪽 수술하고, 또 반대편도 와서 1년에 두 번에 걸쳐서 수술했다"라며 "뼈 마디마디 관절인데 손가락 변형도 왔다"고 했다고.
이어 "목소리는 살아 있으나 시원하게 노래를 부를 수 있을지 하는 게 저한테 지금 숙제다"라며 "노래하고 싶다"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특히 3년 전에 유방암 수술을 받은 이은하. 건강을 위해 다이어트를 하고 있다는 그는 "하루에 기본적으로 7000보~1만 2000보를 걷는다"며 "원래 다이어트하려면 빨리 걸어야 하는데 천천히, 가늘고 길게 하루를 보내고 있다"고 밝혔죠.
트로트 가수 정정아를 만난 이은하는 '6개월 전보다 몸이 가벼워 보인다'는 말에 "작년 마지막 무릎 수술하고 6개월 딱 됐는데, 지금 22㎏ 뺐다"라며 "아직도 15㎏은 더 빼야 한다"고 전했습니다.
이은하 나이 고향 프로필 노래 봄비 가사 근황 아버지
이은하 나이는 1961년 3월 29일생 63세입니다.
서울특별시 성북구 돈암동 출신.
사촌동생 김정은도 가수죠.
종교는 불교
이은하는 1973년에 '님마중'으로 데뷔하였습니다.
브라운관에는 1975년 동양방송에서 그 해 발표한 '아직도 그대는 내 사랑'으로 처음 모습을 보였는데, 그 전에는 미성년자의 방송 출연이 엄격해서 억지로 나이를 올려서 출연한 것.
첫 데뷔곡이 방송을 타지 못했고, 이은하 본인도 밤무대에서만 부를 수밖에 없어 그닥 유행세를 타지 못한 데 비해, '아직도 그대는 내 사랑'은 방송을 타자마자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습니다.
특히 당시에 한영애를 제외하고 보기 드문 허스키한 보이스로 내지르는 시원한 가창력에 연예계가 집중했다고.
방송 풍조상 TBC 전속으로 활동했지만, 이후 1977년 MBC 10대 가수 가요제에서 처음 10대 가수에 들고 1985년까지 들면서 10년 연속 10대 가수상 수상이라는 기록을 세웠습니다.
이 시기 함께 10대 가수에 든 혜은이와 쌍벽을 이루며 여자 가수의 양대 산맥으로 활동했고, 비교적 다른 노래 스타일과 분위기로 둘이서 70년대 말을 풍미했습니다.
이후, 같은 해 1976년 '최진사댁 셋째딸'과 1977년 '밤차',1978년 ‘겨울장미’, 1979년 '아리송해', '봄비', '당신께만'이 연속적으로 대히트를 기록하면서 70년대 말에 TV든 라디오든 어느 채널이라도 틀었다 하면 이은하의 노래가 나오지 않는 곳이 없었다고.
게다가 TBC는 당시 한국 방송계에서는 따라잡을 주자가 없을 정도로 쇼 오락 프로그램 부문에서는 최신 트렌드를 선도하던 곳이었고, MBC에서도 일본의 후지 테레비와 제휴하며 맹추격을 하고 있었죠.
이 두 곳의 예능계를 확 잡고 있었으니, 대중의 인기를 끄는 것은 시간 문제.
그러나 군사반란으로 정권을 획책한 신군부에 의해 자행된 1980년 11월의 언론통폐합으로 인해 동양방송과 동아방송이 한국방송공사에 강제로 통합되면서 이은하의 가수 인생에 큰 위기가 찾아오는데, 방송국이 하나의 소속사를 겸하던 당시 풍조상 이은하에게 소속사가 하루 아침에 사라진 것이나 다름 없는 현실은 크나큰 충격이자 슬픔이었죠.
그 밖에 최진희, 한혜경, 정윤희, 이순재, 사미자, 송해 등 TBC 소속의 유명 연예인들에게도 어쩔 수 없는 현실이었다고.
1980년 11월 30일 자정을 기해 동양방송은 송출 종료 후 모든 사업이 KBS로 이관되었고, 이날 밤 고별 특집 방송으로 편성된 TBC 가족 여러분 안녕히 계십시오를 통해 소속 연예인과 방송인들이 한 자리에 모였는데, 이은하는 이 자리에서 방송 데뷔곡 '아직도 그대는 내 사랑'을 부르다가 눈물을 주체하지 못하고 목이 메여 노래를 완창하지 못했습니다.
당시에 생방송에서 눈물을 흘리는 행위는 가요 프로그램에서 주간 차트 1위를 차지했거나 연말 가요제에서 가수왕으로 뽑혔을 때 터져나오는 특별한 감정 상황을 제외한다면 흔하지 않은 일이기 때문에 제법 큰 방송사고였죠.
그 결과로 보안사령부로부터 찍히는 바람에 3개월간 방송 출연을 할 수 없게 되어 다음 날인 12월 1일에 KBS에서 진행한 통합 기념 특집 방송에서는 출연이 제외되었다고.
출연이 재개된 이후에는 ’네가 좋아‘, '바람에 구름 가듯'을 통해 당당히 등장했는데, 1982년 조사된 연예인 인기 랭킹에 따르면 이은하는 남궁옥분에 이어 2위로, 이미자, 혜은이보다 순위가 높았습니다.
이은하 당신께만 동영상 ▼
이후 산울림의 김창완이 작곡해 준 '사랑도 못해본 사람은'이 1984년 방송가 가요대상을 휩쓸고, KBS 가요대상까지 수상하면서 과거의 명성을 다시 되찾죠.
이후 1985년 김창남이 작곡한 슬로우 팝 형식의 '다시는 사랑하지 않으리'와 장덕이 작곡해 준 '미소를 띄우며 나를 보낸 그 모습처럼'은 긴 곡명으로 유명세를 탄 데다가, 팝 발라드 형식에 이은하의 시원한 가창이 가미되어 기록적인 대히트를 기록하며 연예계 커리어의 정점을 기록했습니다.
70년대에는 어린 나이였기 때문에, 조금 미숙함의 탁성이였다면, 80년대에 들어서는 조금 더 안정되고 파워풀한 허스키 보이스로 자리잡은 것을 알 수 있죠.
1986년에는 '미소를 띄우며 나를 보낸 그 모습처럼'을 발매했지만 당시 공포의 외인구단 OST로 큰 인기를 끌고 있던 정수라의 '난 너에게'에 밀려 10관왕에 실패하게 되었습니다.
1989년, 이은하의 마지막 히트곡이라고 할 수 있는 '돌이키지마'로 마지막 부흥을 끌어올렸다. 전영록이 다시 시작하라는 의미로 선물해준 곡이라고 합니다.
1990년대 초에 건설 회사 사장이던 아버지 이배용이 빚 보증을 이은하의 명의로 서서 그로 인해 20억 원에 달하는 빚을 떠안게 되었습니다.
이때문에 90년대 당시 시세가 8억 원에 달하던 서울 자택까지 다 넘어가게 되었지만 밤무대까지 뛰며 아버지의 빚 20억을 모두 갚게 되었다고 하죠.
그 와중에, 1992년에는 탈출이라는 앨범을 발매하게 되는데 본인이 말하기를, 노래를 하는 시간만큼은 빚을 갚고 또 허덕이며 살아가는 이 현실과 상황에서 탈출하고 싶었던 의미에서 이 앨범을 발매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2015년에 다시 사업을 해보려고 시도했으나, 그것도 잘 안되어서 결국 파산 선고를 받아 면책 절차를 밟았고, 결국 2020년이 되어서야 모든 빚을 다 갚게 되었다고.
가수들은 원래 무대에서 자주 미끄러지고, 넘어지는 것이 일상이며 부상을 당한 뒤 회복되기까지 충분한 휴식과 치료를 해주면 금세 회복하지만 빚을 갚기 위해 가수 활동을 무리하게 하다 보니 조금이라도 쉴 수 없는 상황인지라 수술 대신 스테로이드를 계속 맞았는데, 그러다 보니 부작용으로 쿠싱 증후군이 생겨 살이 30kg 이상 쪄 180도 다른 모습이 되었다네요.
다행히 2020년에 들어서 과거만큼은 아니지만 예전의 모습을 어느 정도 되찾았고, 가창력 역시 어느 정도 회복세에 접어들었습니다.
그해 4월 25일 불후의 명곡 가요톱10 골든컵 특집에 출연하였는데, 비록 투병으로 인해 외모는 과거와 달라졌지만 여전히 녹슬지 않은 가창력을 보여주며 최종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이 날 그녀가 부른 곡은 임희숙의 대표곡 중 하나인 '내 하나의 사람은 가고'. 이후 2020년 10월 10일에 가요톱10 골든컵 특집 2편에 출연.
2021년에는 다시 유방암 진단을 받아 수술을 하고 경기도의 사찰에 머물며 요양 중이라고.
2022년에는 쿠싱 증후군의 원인인 스테로이드는 모두 빠져나갔다고 하며, 체중 조절을 위해 다이어트를 해서 살만 빼면 된다고 했었지만 후유증으로 양쪽 무릎의 연골이 심하게 마모되어 인공관절 수술을 받았습니다.
이때문에 거동이 쉽지 않아서 다이어트는 잠시 중단했었기 때문에, 다이어트를 강행했던 2023년 초 활동영상과 휴식기 이후 연말 활동영상에 몸 상태 차이가 크다고.
2023년부터는 다행히 많이 회복되어 본격적인 활동을 재개했으며 하반기에 예정되어있던 데뷔 50주년 콘서트 대신 팬미팅을 진행했습니다.
질곡의 세월을 살아왔음에도 음악에 대한 열정이 변함없는 모습을 보면 정신력과 의지에 있어서는 일반인의 영역을 아득히 초월한 면모를 보여주죠.
아버지는 원래 유명한 아코디언 연주자 이배용 씨.
이런 집안 배경으로 어릴 때부터 음악을 접하게 되었고 5살의 나이에 무대에 출연했다고 합니다.
처음에 트로트를 배우기 시작했지만 변성기를 겪으면서 소울팝으로 전향하게 되었다고.
아리송해~ 아리송해~
경쾌하게 노래 부르던 이은하의 모습이 눈에 선하죠.
앞으로 건강하게 가수 생활 잘 하시길 빕니다
이은하 파이팅!